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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돈이 열린 나무

 내가 생각해도 엉뚱하다. 이 글을 읽고 나를 정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상상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떨어지지 않는 파란 나뭇잎을 유심히 본 것이 발단이었다. 간밤에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왜 날려가지 않았을까.   발로 툭 하고 건드렸다. 나뭇잎은 움직이지 않았다. 틈새에 끼어있나? 유심히 보았다. 누군가가 공업용 스테이플로 떨어지지 않게 붙여 놓았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다. 병상의 어린 여자는 벽돌집에 있는 나무의 마지막 이파리가 떨어지면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믿었다. 열, 아홉…셋, 둘, 마지막 한 개가 대롱대롱 달려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소녀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처럼 추운 밤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잎새가 땅에 떨어지면 소녀는 죽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말을 들은 ‘실패한 화가’ 노인은 눈보라 치는 추운 밤 등불을 밝히고 붓을 들고 사다리를 타고 그 집 담벼락에 올라 마지막 잎새를 그려 넣었다. 60세가 넘은 허약한 체질의 무명 화가는 온몸을 떨며 그림을 그리다 폐렴에 걸려 죽고, 젊은 여자는 죽을 운명이 아니라고 믿었는지 건강을 회복한다.   산책을 계속하면서 나는 누군가가 붙여 놓은 그 나뭇잎을 생각했다. 순간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산책로에 붉은 단풍나무가 있겠지. 11월이 오고, 바람이 불면 잎이 하나둘 떨어지겠지. 죄 없는 나무는 벌거벗고 겨우내 바람의 채찍을 맞고 있겠지. 구해줄 방법은 없을까. 사다리를 타고 나무에 올라가 나뭇잎을 하나하나 실로 묶어 주면 강풍에도 견디고 눈이 와도 붙어 있을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이 나무에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고 혹시 쳐다본들 멀어서 실로 묶은 것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저 바람에도 견디어 내는 강한 나무 하나로 생각할 것이다.     이상한 발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뭇잎 사이에 돈을 주렁주렁 매다는 것이다. 100달러 지폐는 너무 많고 10달러나 20달러를 열 장 정도 실로 매달아 나뭇잎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신경을 안 쓰겠지만 누가 나무를 쳐다봐도 잎새에 가려 돈인지 모를 것이다. 어떤 엉뚱한 사람이 발견하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과 따듯 돈을 따려고 할 것이다.상상은 무한하고 자유다.   나는 거의 매일 5마일 이 트레일을 100분간 걷는다. 산책로에는 요즘 고염, 돌감, 이름 모를 열매가 있다. 경험으로 어떤 열매가 깨물어도 안전한지 안다. 야생 열매는 싱싱한 맛이 있다. 산책로에는 과실수 외에도 토끼, 사슴이 나타난다. 아침마다 들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할머니, 알맞은 돌을 찾아 탑을 쌓는 여인도 있다. 그런가 하면 사슬도 없이 사나운 개를 끌고 오는 매너 없는 사람도 있다. 바닷가 공원이나 트레일을 걷는 대부분의 사람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나 같은 비정상적(?) 사람들도 간혹 있다.     한 남자는 일 년 내내 공원에서 낮을 보낸다. 여름에는 벗고 일광욕을 즐기고 겨울에는 담요를 갖고 와 바람을 막아주는 연장을 쌓아둔 창고에 기대어 음악을 듣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즐긴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할지 모르나 그의 모습은 아주 평온해 보인다. 산책로 옆에 돈나무를 만들고 싶은 생각, 그냥 이런 발상을 해 보았다. 내 정신은 멀쩡하니 크게 염려하지 않았으면 한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나무 나무 하나 마지막 잎새가 나뭇잎 사이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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